오랜 예전, 내가 교회를 다니고 있을 적이었다. 기존의 고전적 스타일을 탈피하여 대중음악의 발라드 장르로 성가가 작곡되어 나오던 시절이었다. 일부 보수적 교회어른들은 말세가 온다며 싫어했다. 록음악이 사탄의 음악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걸 보면 그시절의 세속음악 형태가 아무리 달콤한 발라드 형식이더라도 불성하다 여겨졌음은 이상한 게 아닐 것이다.
우연히도 그 무렵, 아버지는 중급 오디오를 구입하셨고 난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록’이나 ‘헤비매탈’이라는 장르를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한참을 대중음악에 심취하던 어느날 클래식 음악을 접하고 나선 대중음악과 절교했다. 내 사춘기와 청춘의 시작, 생과 사를 오가며 마음 한구석에 회오리를 안고 살던 그때, 롤러코스터 같던 내마음을 적나라하게 대변하던 건 클래식이었다.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그토록 섬세하게 한올한올 표현하다니, 세상의 모든 천재중 최고의 천재들이 클래식 작곡가라고 믿었었다.
그러기를 십수년, 다시 대중음악을 듣기 시작하고선 담쌓고 살았던 헤비매탈을 틀기 시작했다. ‘아이언 메이든’의 ‘브레이브 뉴 월드’, 그 음반은 내게 그런 거였다. 모르고 살았던 매탈의 해방감과 카타르시스, 다 큰 놈이 그런 걸 듣냐는 비아냥도 들어야했다. 클래식을 오래 접해서인지 예전엔 들리지 않던 각 악기들의 테크닉과 짜임새도 귀에 팍팍 꽂혔다. 클래식 연주자와 테크닉을 비교하는 게 얼마나 합당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왠만한 대중음악 장르의 테크닉으로서의 정점은 헤비매탈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현란한 속주와 한치의 오차 없는 악기들의 일체감은 그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몇배나 배가시켰다. 놀라왔다.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음악을 세련된 테크닉으로 울부짖으며 영혼을 일탈시키니 말이다.
나가수에서 김경호가 ‘못찾겠다 꾀꼬리’를 헤비매탈(혹은 하드록 언저리 쯤) 버전으로 불러제끼더니 1등을 했다. 한 중년부인의 인터뷰 “이렇게 멋있는 게 록인줄 처음 알았어요”. 나이값이라는 테두리의 장벽이 높은 한국의 중장년층에게 이런 장르의 음악이 태생적으로 낯설다는 논리는 편견이다. 한국의 어른들을 보라, 술한잔 들어가면 지구촌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제일 시끄러운 사람들이다. 또 우리의 사물놀이도 시끄럽기로 하면 세계 단연 톱이다. 다양한 연령층이 모이는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에서 록 장르의 음악이 의외의 선전을 하고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오디오를 바꾸면서 음악의 애정성향이 달라진 것 처럼 청취환경이 달라지면 음악의 선호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가수 영상중에 오디오 비트레이트 수치가 높은 놈을 골라 앰프에 물려 볼륨을 높이면 음악감독을 새로 영입하여 사운드를 업그레이드 했다던 그 무대의 현장감을 얼추 느낄 수 있다.
시대에 항거하는 고상한 록정신이 아니더라도 왠만한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록을 품고 산다. 록은 인간의 본능이다.
일렉트릭 기타의 현란한 비명과 베이스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 거칠고 명료한 드럼의 압도적 사운드는 현실의 해방구이다.
오늘, 또다시 김경호를 듣고 아이언 메이든의 노래를 듣고… 종일 록 그 이상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