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ognoscemo | 12월 8, 2010

‘실직가장’이 된 친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오랜만에 연락된 친구는 메일로 자신의 비극을 알렸다. 올해 본격적인 백수생활에 들어갔노라 했다. 평소 말도 길게 안하는 놈의 짧은 글에서 심리적 방황이 이만저만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다 녀석과 만날 때면 수다로 반복하던 레파토리가 있었다. “돈 없고 빽 없는 너나 나같은 놈들은 그냥 장사 하나에 도박 거는 겨”. 문제는 녀석이나 나나 장사에는 잼병이라는 사실이다. 숫자놀음에는 원래 소질도 없거니와 득실 꼼꼼히 따져가며 하는 잔머리성 대인관계는 쉽게 지쳐버리는 체질이다. 그저 한적한 외지에서 종일 책만 보거나 음악만 들으며 단순노동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한량 세월을 보내는 게 딱 어울리는 존재들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세상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치열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 세간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사회 부적응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요구하는 승부근성과 경쟁의 치열함을 견디지 못하고 녀석은 결국 불안했던 직장마저 잃고 말았다.

한참 귀여운 딸아이의 밥그릇이 미안할 것이고 자신을 믿고 공동의 삶을 선택한 아내을 향한 죄책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난 미혼이지만 그 감정이 어떤 건지 아주 잘 안다. 나에겐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비참한 추억이 있다. IMF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무렵, 동네 수도원이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먹을 것이 부족한 가난한 자들에게 치즈와 빵을 나누어 주던 그날, 난 그 가난한 자들 틈에 줄을 서서 먹거리 한봉지를 얻었던 기억이 있다. 줄을 선 내 앞뒤로 남루한 부랑자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대충 한두달 정도 매주에 한번씩은 가서 먹거리를 얻어갔었다. 얻어온 딱딱한 치즈 덩어리를 후라이팬에 녹여 질겅질겅 씹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이유는 나 말고도 주변에 함께 동참했던 몇몇 유학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도 줄을 서러 갈 때나 가져온 음식을 먹을 때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웃으면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난 눈물을 소비하진 않았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동물이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극복하니 말이다.

실직한 이 친구의 지나온 삶을 생각하니 친구인 내가 생각해도 억울할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유학을 나와서 적어도 남들 하는 공부만큼은 하고 귀국을 했었다. 이런 저런 학교에 출강하면서 기회를 보았을 것이다. 남는 것 하나 없는 시간강사의 세월, 그래도 한가닥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가족들을 달랬을 것이다. 허나 그를 기다리는 건 학연과 지연과 돈이었다. 그런 옵션들이 없어도 가뜩이나 순수 경쟁률이 하늘을 찌르는데 그 옵션들마저 넘을 여력이 그에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귀국한지 대략 5년을 조금 넘기고서 실직자로 전락했다. 그는 대학시절 집이 서초동이었다. 전형적인 서울의 중산층 출신, 그는 서울의 그늘을 반증하는 산역사가 되었다.

실직을 알렸던 그에게 메일로 답신을 보냈다.
“아, 쒸바…
대학 나오고 유학가면 뭐하나, 돈없고 빽없으면 다 장롱서류인 것을,
전쟁 안나면 뭐하나, 하루하루가 돈과의 전쟁인 것을,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나라에서 태어나면 뭐하나, 돈없고 빽없으면 이민자보다 못한 삶인 것을,
그렇다고 여기 타향에서 이렇게 살면 뭐하나, 쓸쓸한 삶인 것을…
너의 백수스토리를 듣고 오늘 나도 졸라 울기로 했다.
그런데 울면 뭐하나, 알아주는 이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것을…
아 쒸바, 인생은… 역시 백년간의 망명길인겨… “

학력 하나로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러움 없었을 그의 패배를 보고 나니 문득 얼마전 대학을 거부한다며 자퇴를 선언한 한 학생의 글이 떠오른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겐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맹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두고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볼 일이다”.

녀석은 조만간 지구 반대편에 살고있는 내게 잠시 오겠다고 했다. 잘 마시지도 않아 창고에 썩고있는 소주팩들은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Responses

  1. 이 세상은 정말 불공평해요.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나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한 것 때문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노력하면 극복가능하다는 생각이 가장 멍청한 생각같아요.
    그런데 나도 그런 멍청한 생각을 가지고 지금 나의 한심한 꼬라지를 자위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아서
    갑갑, 답답하고 막막하네요.

  2. 서울 –
    누군가했네, 오랜만이다.
    자신에게 한숨 짓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멍청한 길을 따라 걷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나마 지우지 말기 바란다.
    그런 고민하는 거 자체가 이미 한심한 꼬라지가 아닌 게지.
    정말 한심한 꼬라지는 멍청한 생각마저 버리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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