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았다. 한국의 대형서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작년 한해 최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 말이다. 이런 뉴스를 접하고 나면 좀 뜨악해진다. 기껏해봐야 유명인의 비현실적 감성을 도구로 삼은 소설이나 수필로 마스터베이션 하거나 치열한 한국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문적 지식이 유일한 대안이라며 각종 ‘자기개발서’에 몰두하던 독서의 주체들이 작년 하반기엔 뭔 바람들이 불었는지 이 고리타분스런 책을 찾았다 하니 이상하기 그지없다. 갑작스럽게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는다. 유행의 지배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정신적 피조물들의 조악스런 난리질이라고 해도 이건 뭔가 좀 수상하다. 편견이길 바라지만 ‘시크릿’류의 책 한권을 읽고나서 대단한 교양서적 접했다고 착각하는 게 한국의 독서수준이라 생각한 내겐 이 책의 베스트셀러 등극은 ‘서프라~이즈’ 그 자체인 게다. ‘정의란 무엇인가’…. 와우~ 로보트 태권 V가 악의 무리들에게 니킥을 날리는 행위를 두고 뭘 거창하게 책까정 쓰는 건지, 그런데 이 책을 쓴 사람이 하버드 대학 정치철학과 교수란다. 아 그러니까 뭐냐, 이 하버드 대학교수가 할 짓이 없어서 귀한 시간 할애하며 웃기는 짬뽕서적을 만들진 않았을텐데, 이 제목부터 고상하고 철학적인 하버드 교수의 책을 인문학 빵점사회인 한국의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니… 대형서점가에서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베스트셀러 등극시키기 커넥션을 고려한다 해도 이건 좀 의미심장한 일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알게된 건 같은 제목을 가진 한 방송사의 강연 영상을 보고 난 후였다. 아마 지금도 한 방송사에서 연속 방송중인 걸로 안다. 난 먼저 ‘하버드’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갔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촌놈이 하버드 대학의 강의를 접하다니, 그야말로 오래 살고 볼 일인 게다. 괜히 ‘하버드’라는 단어에 주눅들고 사대주의적 동경심이 작용하지나 않을까 무지 조심하면서 봤다. “학생들은 과연 천재들일까?” 하는 선입견을 깨는 건 의외로 짧은 시간만에 이루어졌다. 교수의 계속되는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거나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펴다 말문이 막히는 학생들이 자주 나온다. 내가 동영상을 보면서 주목한 것은 공리주의나 자유주의에 관한 내용이나 학생들의 수준이 아니라 교수의 강의 방법이었다. 한국에서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던 애를 교육시키는 부모던 답을 알려주려고만 하지 생각을 유도하려는 시도를 잘 하지 않는다. 친절히 답을 알려주고선 선생노릇 부모노릇 잘 했다고 착각하는 것, 그게 한국교육의 현주소이며 수준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더 절실한 건 특정한 이념이 아니라 이념의 사유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는 거 아닐까 싶다. 영상속의 강연자는 학생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계속하거나 대답이 마무리될 때쯤 또다른 변수를 던져서 뱉어놓은 논리의 함정을 만나게 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대변되는 공리주의의 간단한 골자를 알리기 위해서 상대가 그 이념의 장단점을 스스로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한다. 답을 한가지 말하기 전까지 늘어놓는 수많은 예화와 질문들… 요새들어 가뜩이니 스스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집중되는 ‘설교’를 듣게 된 체험이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의 강의를 직접 영상으로 직접 보여줬다는데… 뭔가 이상하다. 시청률이 1%도 채 안됐단다. 누구의 표현을 빌자면 하루방송이 끝날 때 울려퍼지는 애국가의 시청률과 비슷했다 한다. 그러면 그렇지, 사건이 이쯤되면 베스트셀러의 진실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게된다. 여기저기서 청소년 필독서로 언급되니 혹 어느 단체에서라도 집단 구매를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을 청소년 필독서로 지정하는 것보다 이 동영상을 교육자 필시청으로 지정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그걸 필독서로 지정한들 끝까지 정독하여 읽는 애덜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차라리 이나라 교육자들의 교육방법에 각성제 역할을 하는 효과로서 더 큰 의미가 될 것 같다. 어른은 공부하지 않으면서 애덜한테만 죽어라 공부하라고 하는 한국사회, 이 동영상 하나를 보고 쉽사리 결론지을 수 없지만 내가 느낀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의 주체는 학생이 아니라 교수였다. 왠갖 잡연구는 학생들과 후배를 시키면서 정작 결과물에 이름만 떡 하니 올려놓는 한국의 수많은 교수들에게 이 동영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의’ 풍토가 밑바닥을 치는 한국사회에선 이런 책이 아무리 베스트셀러에 올라도 사회가 달라지진 않는다. 원래 아랫것들은 낮에 머리가 깨어도 밤이 되면 술한잔에 넋두리 하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다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도 벅찬 인생들이기 때문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이 강연자를 국회에 초빙해놓고 의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는 걸 생중계하는 게 훨씬 이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다. 젊은이들은 미래의 자원일 뿐, 정작 사회를 이끌어가는 진두지휘자는 현재의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 하버드가 유명한 건 똑똑한 학생들 때문이 아니라 유능한 교수들 때문이며,
선진국이 좋은 건 똑똑한 시민들 때문이 아니라 유능한 정치인들 때문이다. –
내가 이 동영상을 보면서 느낀 공리주의의 필요조건이다.
저도 어제까지 이 특강 다 봤어요ㅋㅋ
강연에서 다룬 여러 가지 주제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저도 궁금해 했던 것들이 많아서 매우 흥미로웠던 것 같고, 고리타분하고 땩딱하게 생각했던 선인들의 이론을 이렇게 현실적인 실례로 풀어볼 수 있어서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토론의 분위기가 정말 부러웠어요- 제가 여태까지 해봤던 토론수업에선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고 상대의 말꼬투리 붙잡고 늘어지면서 논리를 무너뜨리려는?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식이었는데- 화면 속 학생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선하고 부러웠어요. 그리고 학생이 자칫 논리에 어긋난? 이론을 펼칠 때에도 경청해주고 그 의사를 존중해주는 교수님의 태도에도 감동감동열매였어요*_*
By: 서울 on 1월 27, 2011
at 9:51 오전
민주주의 사회라는 구실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논리의 옳고 그름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예를 갖추면 논리의 부딫힘을 해결할 여지가 생기는데 그게 안되면 논리고 뭐고 모두 소용없게 되거든.
센들 교수가 가르치는 위치에 선 사람으로서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거라고 본다.
요샌 중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가르치는 사람들의 폭력이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오네.
육체적 폭력의 빈도수가 그정도라면 언어폭력은 오죽하리.
철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인간적이게 하는 좋은 도구일 수는 있을 것 같다.
By: sognoscemo on 2월 12, 2011
at 9:05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