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ognoscemo | 2월 14, 2011

체념의 슬픔

최고은의 아사(餓死) 소식이 내게 가져다 준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체념이다. 놀랍지도 않고 신선하지도 않다. 여태껏 희소성 스타문화의 코드에만 열광하던 사회의 구성원들이, 흔해빠진 다수 중 한사람에 불과했던 한 작가의 죽음을 보고 놀라고 슬퍼하는 이 기이한 현상…

정말 몰랐을까? 소수의 스타를 탄생시키기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존재들의 절박한 현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그게 시나리오 작가였든 영화판의 스텝진이었든 평균 월수입이 50만원이라는 이야기가 떠도는 현실은… 과연 우울한 농담일까?(난 언젠가 영화판 스텝으로 일하던 어느 대졸자가 일년을 죽어라 일하고 모은 돈이 10만원도 채 안되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가 절반이다. 그 존재들의 평균 월수입이 얼마인지만 알아도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그다지 이상한 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의 진실은 그녀의 죽음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렇게 죽는 뉴스를 놀라워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임을 적나라하게 증명시킨다(비정규직 노동자가 절반이라는 뜻은 노동자들 중의 절반이라는 뜻이다. 일거리가 없는 백수들까지 포함하면… 현실의 진실은 더 우울해진다). 계산해 볼 필요도 없이 그녀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고 죽을 때까지 대학을 다니던 4년의 시절동안 낸 등록금의 액수도 벌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로 굶어죽은 것이 맞는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는 실상 별 의미도 없는 논쟁이다.

88만원이 어떻네, 신자유주의가 어떻네, FTA가 어떻네, 이명박 꼴통이 어떻네, 최고은의 죽음이 어떻네 고상한 척 떠드는 우리들… 그 수다의 현장 앞엔 5천원 만원짜리 커피가 놓여있고, 창밖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있고, 또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지하의 유흥업소에서 술과 음악을 끼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20여만명의 여성 야간업소 노동자들을 마주하며 “얼씨구”를 연발한다.

5천원짜리 커피,
화려한 고수부지의 야경…

5천원을 벌기위해 한시간 내내 서서 커피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인생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우리들,
철야 야근을 하는 피곤한 노동자의 일터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도시야경의 아름다움을 떠드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도시의 마법에 걸려 개념을 상실한 환자들이다.

최고은의 죽음이 하나도 놀랍지도 않고 선뜻 슬프지도 않은 이유는 이런 연유에 기인한다. 슬픔의 현장들이 너무 일상화되어 그 모습들이 슬픈 건지 당연한 건지 구분이 안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작 슬픈 건, 이 슬픈 뉴스를 접하면서도 더이상 나올 눈물도 없이 이 현실이 남긴 체념이라는 흔적을 내일도 멍청하게 되새김질 할 따름이라는 사실 그 자체다.

새삼 내가 최고은보다는 복에 겨운 놈이며, 국민의 절대다수가 아사에 허덕이는 수많은 나라가 아닌 이 나라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이기적 위안 삼으며 그녀의 죽음을 애써 슬퍼해본다.

오늘도 불행한 존재들이 나를 깨우친다.


Responses

  1. 맞아요. 저도 너무 편해서 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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