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ognoscemo | 3월 8, 2011

소수를 위한 전쟁

한국에서 벌어지는 뉴스들을 보고있으면 세상의 요지경 속을 종합 선물셋트로 보는 것 같다. 어떤 뉴스를 보면 세계에서 최고로 좋아보이는 것들 무지 않아 보이고, 또 어떤 뉴스를 보면 거꾸로 세계 최악의 것들 투성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모두가 사실이다. 한국은 그런 나라다. ‘극과 극’이 공존하는 나라 말이다. 한 동네 안에서 부자와 극빈층이 공존하고, 서비스의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고, 양보의 미덕과 불합리가 공존하고, 극한 유희와 극한 억울함이 공존하는 나라다. 남의 나라 보듯 뉴스를 보다보면 무척 재미있다. 새로운 소재가 고갈됐다 말하는 영화 시나리오 바닥의 넋두리가 이해가 안간다. 들여다 보면 세상에서 제일 희안한 일들이 한국땅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데 영화의 소재가 바닥나다니… 잘 이해가 안간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의 한 교수가 허구헌 날 애덜한테 ‘몹쓸 짓’을 하여 해임을 당하는 뉴스는 또 얼마나 극하게 웃긴가? 그런데 정작 더 웃기는 건 그런 유형의 교수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한국사회의 각 분야에 이와 유사한 각종 유-무형의 비상식적 폭력들이 만연하다는 것일 게다.

재밌는 뉴스가 또 하나 있다. 음악계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프로가수들을 일반인이 평가하여 서바이벌 경쟁을 시키는 ‘나는 가수다’라는 공중파 프로그램이 대박을 터뜨렸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도내에선 이것도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은데… 이것도 극한의 뉴스다.

월요일이 오기 전에 미치도록 즐겨보자는 의도만 생각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나와야만 하는 상황들을 생각하면 쓴웃음도 숨길 수 없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고 “앞으로 가수다운 가수가 인정받는 풍토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하지만 아쉽게도 바램들이 너무 꿈결을 오간다. 시청률을 목표로 마련한 그 프로그램이 당분간은 승승장구할 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고민을 해야할 날이 올 것이다. 그 고상한 바램들과 시청률의 의무가 만나는 교차지점, 그게 현실에서는 이루어내기 거의 불가능한 접점이기 때문이다. 시청률도 전쟁처럼 경쟁하도록 만드는 방송 시스템 테두리에선 고상한 바램들은 다 소용없는 것이다. 그건 마치 교수로서의 모범적인 모습으로는 돈과 명예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김인혜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아직도 대학가에는 학생들을 향한 ‘몹쓸 짓’ 뿐 아니라 논문이나 저술서의 탄생과정에서도 교수로서의 ‘극’한 비양심적 행위들이 만연한다. 학생들마저 인터넷 자료들을 복사한 레포트 제출하는 ‘극’한 문화도 사필귀정인 게다. 이미 학문의 성지로서 죽음을 고한 대학가, 이게 비단 대학가만의 문제일까?

한국사회의 이런 병폐는 고질적 편견이 바뀌지 않는 한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소수를 위한 사회’라는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것, 그게 바로 ‘극과 극’ 뉴스들이다. 한국사회를 보고있노라면 구성원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처철하게 전쟁을 치루는 터전같아 보인다. 사회 어디서나 그 ‘소수’에 해당되지 않으면 패배감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한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박지성의 탄생에 기준을 두고,
한국 스케이트의 발전을 김연아의 탄생에 기준을 두고,
스포츠의 발전을 올림픽 메달 수에 기준을 두고,
한국교육의 위상을 서울대의 발전에 기준을 두고,
국가의 위상을 반기문의 탄생에 기준을 두고,
경제발전을 대기업의 해외진출에 기준을 두고…

다수는 온데간데 없고 소수에만 기준을 두는 정서는 한국을 자꾸 ‘극과 극’으로 내몬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청춘을 불살랐던 스포츠와 이별해야 하는 대다수의 스포츠인, 그 스포츠인을 양산시키는 스포츠계의 구조(오죽하면 경기를 돈주고 사고파는 사건이 터질까, 그나마 밝혀진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건 대졸자들의 실업문제나 수입없는 대다수의 연예인들의 문제, 또 극한의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가수다’의 현재진행형 고민일 것이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이 일면 좀 안쓰럽다.

극과 극의 사회,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극’한 큰소리는 더 강해진다. 김인혜 사건은 바로 그런 사회가 만들어낸 가능성 농후했던 부산물일 뿐이다(이상할 거 뭐 있나?).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소수의’ 세계 1위 구호만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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